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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끄적거리기 | 2008. 5. 4. 01:15 | Posted by 맥거핀.

시끄러운 세상이다. 말들은 넘쳐나고, 주장은 상반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인터넷 세상을 떠돈다. 같은 사실을 놓고 한쪽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하지만, 한쪽에서는 광우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글쎄, 본질적으로 이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것은 기본적으로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책의 문제거나, 의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운하를 건설하는 것이라든가, 대통령 측근들이 비리를 저지른다거나, 의료보험 민영화를 한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이는 다른 지점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 즉 결정에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종의 회색분자들은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TV를 틀면 우리가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의 위험성이 높으며, 한국인들은 특별히 그런 광우병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다시 신문을 펴면, 그것은 잘못 알려진 정보이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며, 한국인이라고 특별히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식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한우라고 그렇게 안전하지도 않으며, 광우병의 위험은 어떤 소에나 도사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분명히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일 텐데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상반된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몇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적어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는 아직 상당히 미스터리한 부분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암의 메커니즘을 아직 완벽히 밝혀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어떻게 광우병에 걸리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정말 위험한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불확실한 확률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 확률은 적어도 0%는 아니라는 것. 0.00000......1%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어떤 확률은 있다는 것.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이것을 놓고 싸우는 것은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가능성을 놓고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미궁 속에 놓여 있는 한, 그리고 현재처럼 광우병의 위험성이 논의의 중심에 놓여있는 한, 이 싸움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니,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싸움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 우리 모두가 광우병 전문가가 아닌 상황에서 이러한 것이 논의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싸움이 자칫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까 경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싸움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황우석 박사의 복제논란을 둘러싼 황빠와 황까들의 싸움, 그 대리전의 재판(再版)처럼 보인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일종의 과학적 캡슐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황빠와 황까들은 꽉 막힌 과학적 캡슐을 둘러싸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싸움을 벌였다. 왠지 지금은 그의 재방송 같지 않은가?

 

나는 그보다는 현 정부가 훨씬 더 공격을 받아야 할 사항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담보로 하여 국민들에게 충분히 이해를 구하고 진행되어야 할 이 일련의 일들을 총선이 끝나자마자, 기습적으로 처리해버렸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는 정확히 말하면 기습이 아니다. 총선 전에 이미 시나리오가 적혀 있던 일들을 그대로 시행한 것에 불과하다. 아마도 현 정부는 미국 비자 면제 등의 몇 가지 사탕만 던져주면 국민들이 그대로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단지 쇠고기를 싸게 먹게 해준다니까 국민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너무 단선적인 사고였다. 복잡하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 사람들이 MB를 1위로 만들어 준 것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잘 살게 될 것’의 기본은 ‘산다’는 것이다. 일단 살고 난 다음에야, 잘 살고 못 살고가 있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광우병의 위험이 있다고 알려진 순간 어느 누구도 광우병의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먹고 죽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는 현 정부가 발목을 잡히고 있는(아직 잡힐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현재의 지점이 흥미롭게 보여지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대운하도 아니고 의료보험 민영화도 아니고, 장관이나 수석들의 비리도 아니고, 미국과의 협상 때문이라니. 그것도 한우 농가들이 무너져서도 아니고, 식량주권을 내주어서도 아니고, 광우병 때문이라니. 현재의 사람들이 그저 먹고 사는 문제에 얼마나 가치비중을 두고 있는지, 이 사회가 얼마나 물질 기반으로 돌아서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이 광우병으로 뇌에 구멍이 뚫리는 사진에 분노하는 것과 지난 총선에서 강북에 ‘뉴타운’ 공약이 먹혀든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연장선상에 와 있다. 이를 현 정부는 정말 간과했던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어차피 바보들이니까. 또 적당히 구슬러 주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인가.

 

하기는 그들이 국민을 상병신으로 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상병신’으로 불릴 만큼 이미 바보짓을 저질렀으니까. 각종 비리에 얼룩져 있던, 그리고 단견적인 공약들을 남발했던 MB를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줬고, 그들의 연이은 코믹스러운 그러면서도 공포스러운 행동들을, 마치 어린아이에게 볼펜을 집어주고 벽에 낙서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도 다시 총선에서 그들을 밀어주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현재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이 이에 대응하는 방식, 그리고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이에 대응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는 없다. 동일한 내용을 6개월 전과 지금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 같은 팩트를 전혀 다르게 전달하는 능력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가 아닌가, 광우병 위험성이 높은가 아닌가는 미스터리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이에 필요 이상의 공포를 느낀다면, (정부에서 흔히 하는 말대로 ‘오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 공포는 누가 만들어내었는가. 바로 정부, 조선, 중앙, 동아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몇 개월 전만해도 미국산 쇠고기를 절대 먹으면 안된다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지금 정부의 누군가가 그러더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의 위험성을 논하는 것은 다리가 무너질까봐 건너지 않는 것과 같다고.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백주대낮에 다리가 무너지는 것도 경험해봤다. 왜 안 무섭겠는가?)

 

아무튼 지금의 이 촛불집회를 비롯한 국민들의 분노는 너무 늦거나 혹은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고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너무 늦었다는 것은 이것이 대선도 총선도 다 끝난 시점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닌가 하는 것이고,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는 것은 대운하, 삼성 문제, 여러 측근들의 비리,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의료보험 민영화 문제, 여러 자립형 사립고를 비롯한 교육정책들 그리고 FTA 등 건드릴 것은 많은데, 이러한 분노가 잠깐의 분노로 그치지 않을 것인지, 작은 모닥불로 끝나지 않을지, 그래서 도리어 현 정부의 기를 살려주는 꼴을 낳지 않을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 늦었다거나, 빠르다거나 하는 말을 이미 시작된 일에 첨언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촛불집회 같은 것은 좋아하지도 않고 불확실한, 또 하나의 캡슐을 둘러싸는 싸움이 될지 모르는 위험성을 안고 촉발된 일이지만, 지금은 대안이 없다. 소는 집을 나갔지만, 외양간은 언젠가는 고쳐야 한다. 다른 소를 키우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논어(論語)’를 읽다가 좋은 구절이 있어 여기에 첨언하고자 한다.

자하가 거보(莒父)의 읍재(邑宰)가 되어, 정치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속효(速效)를 보려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속효를 보려들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큰 일을 이룩하지 못한다.”

子夏爲莒父宰, 問政, 子曰; 無速效, 無見小利. 速效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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