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대런 아로노프스키

Ending Credit | 2011.03.09 17:59 | Posted by 맥거핀.



(스포일러 있음)


가끔씩, 이야기를 읽거나 볼 때마다, 어떤 인물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주인공의 대사에 맞장구만 쳐주던 조연들, 인상적인 한 장면을 보여줬던 엑스트라, 악인이 죽고난 후, 그 악인의 나름 충성스러웠던 부하들. 이른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증후군. 영화 <블랙스완>을 본 후 발레 <백조의 호수>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내용을 찾아보았는데, 이야기를 찾아보고서 정작 궁금해진 것은 백조 오데트보다는 흑조 오딜이다. 비극적인 결말에서라면 오데트와 왕자가 호수에 뛰어들어 죽고난 후, 그리고 희극적인 결말에서라면 오데트와 왕자가 하늘로 승천한 이후, 오딜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오딜의 그 뒷이야기가 그려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가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오데트와 오딜을 한 무용수가 공연한다는 이유가 그것. 마지막에 오데트의 장엄한 최후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오딜 같은 것을 보여줄 틈이 있겠나.

사실 여기에는, 묘한 모순이 작동하는 것 같다. 발레 <백조의 호수>에는 오딜과 오데트가 겹쳐서 등장하는 장면이 없다. 물론 그것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한 무용수가 두 역할을 모두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다른 것도 작용하는 것 같다.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은 일종의 거울상이다. 한쪽이 선하다면, 한쪽은 악하다. 한쪽이 욕망을 제어당한다면, 한쪽은 욕망을 마음껏 발산한다. 거울 이편과 거울 저편의 존재. 그러므로 두 존재가 한 공간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다. 그 둘이 모두 한 공간에 있는 것을 상정하려면, 우리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상상하거나, 거울을 왜곡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관례적인지 아니면 특정의 공연에서만 그러는지는 발레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이 오데트와 오딜을 한 명의 무용수가 모두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화 <블랙스완>에서 니나(나탈리 포트만)의 분열, 혹은 일종의 착란 증세는 거의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말할 수도 있다. 거울 속 이편의 존재와 저편의 존재를 모두 완벽하게 담아내려고 하는 거울은, 아니 자아는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아가 왜곡을 피하는 방법은, 그 둘을 느슨하게 병치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필요에 따라 그 둘 중의 한 가지를 적당하게 억압하는 것이다. 혹은 강제적으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억압되는 것이다. 영화 속 니나의 경우라면 그것은 스스로에 의해 작동한다기 보다는, 어머니(바바라 허쉬)에 의해 수행된다. 어머니는 니나의 욕망하는 자아를 억압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니나를 어린아이로 묶어두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인간을 백조 안에 묶어둔다는 <백조의 호수> 이야기의 다른 버전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관심과 감시로 니나의 욕망은 제어되어, 니나는 정신적인, 혹은 육체적인 어린아이에 머문다. 니나의 방안에는 인형이 가득하고, 방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니나의 그림 속에 니나 자신은 박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니나가 그림을 찢고, 인형을 내버리는 것으로 그 억압을 벗어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감시의 체제는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니나에게는 이미 내면화되어 있으며, 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감시하는 것으로 추동된다. 예를 들어, 니나가 자신의 몸(어깨)을 긁어대는 것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신체 변형 서사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른이 되려는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날개(욕망)가 자라나는 것을 막는 것, 어른이 되려는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것의 종착점과도 관련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서서히 늙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전작 <더 레슬러>에서도 그러했듯이 나이들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발레단에서 스타는 한 명 뿐이고, 그 스타는 나이가 들고, 아름다움의 강도가 덜해지면, 다른 스타로 대체된다. 발레단의 외부에서 보여지는 공연은 화려하지만, 그 내부에는 위험하고 필사적인 사투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형국은 한편으로는 백조를 닮았다. 물 위에서는 화려하지만, 물 속에서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려야 하는 백조의 숙명.) 이것은 물론 권력의 문제로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향한 사투라고 볼 수도 있다. 발레단의 스타였던, 이제는 물 속에 가라앉아 버린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병실에 찾아간 니나는 "나는 완벽하지 않다"라는 베스의 고백을 듣고, 그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러므로 니나는 완벽해지는 것을 꿈꾸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것은 완벽의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며, 완벽의 순간을 박제하는 것이다. 다시는 복제되지 않을, 단 한 번의 최고의 공연. 그러므로 마지막에 니나는 "완벽함을 느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관점에서는 이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니나가 마지막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녀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예술가들은 죽어가는 순간에 최고로 아름다운, 매혹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반드시 포함되는 어떤 '결여'를 그들이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에는 일종의 미스테리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매혹되는 것은 그것이 완벽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설명될 수 없는 어떠한 점들이 그 이야기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어떤 얼굴이 매혹적이라고 말할 때, 그 얼굴은 완벽한 좌우 대칭이 아닐 경우가 더 많다. 아니, 인간의 얼굴에 완벽한 좌우대칭이 있을까. 우리가 매혹을 느끼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완벽한 좌우대칭'이 아니라, '완벽한 좌우대칭에 가까운' 얼굴이다. 도리어 우리는 완벽한 대칭(로봇의 얼굴)에 때로는 공포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완벽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때로 그것에 매혹당하기 보다는 거부감을 느끼는 때가 있다. 우리가 매혹당하는 것은 도리어 결여의 순간이다. 어떤 것이 (드러나지 않은) 결여가 내포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의 미스테리한 아름다움에 매혹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레슬러>에서 랜디 램(미키 루크)이 더 이상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지고 날아오를 때, 그 결여의 아름다움에 순간 매혹당한다. 그리고 <블랙 스완>에서 니나가 죽어가면서 공연을 펼칠 때 그 공연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담은 것이 된다. 더구나 이제 그 공연은 다시는 재생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이상 완벽한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덧.
이 영화 <블랙스완>이 꿈꾸는 것은, 영화에서 니나가 꿈꾸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영화로서 완벽해지는 것.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조탁 솜씨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영화의 관점을 완전히 흩뜨려 놓고, 관객에게 니나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체험하게 하는(사실 이 영화에서 니나가 실제로 본 것과 그녀의 환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연출력은 독보적인 것이다. 예전에 <레퀴엠>을 보러갔다가, 영화를 도저히 끝까지 견뎌서 보지 못하고 나와야만 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못 본 부분이 궁금하여 나머지를 찾아서, 참아가면서 보기는 했지만,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꽤나 무시무시하다. 다만, 나는 이 영화 <블랙스완>을 보다가 조금은 씁쓸해졌다. 심리적 타격의 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아니 오히려 이번이 더 강력해진 것 같은데, 나는 견딜만해졌다. 견딜만해졌다는 사실은 내가 달라졌다는 뜻일게다.



- 2011년 3월,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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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국 2011.03.13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랙스완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니, 놀랍군!

    정작 영화를 볼 땐, 꽤나 무덤덤한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글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