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와푸코인간의본성을말하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사상 > 사회사상일반
지은이 노엄 촘스키 (시대의창, 2010년)
상세보기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라는 이 책은 1971년 네덜란드에서 벌어졌던 미셸 푸코와 노엄 촘스키, 두 사상가의 TV토론을 기본 축으로, 인간성과 정치에 대한 그들의 사상을 대비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토론의 사회자 폰스 엘더르스는 이들 두 사람을 소개하며 흥미로운 비유를 한다. 그는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분을 산의 양쪽에서 터널을 뚫어 오는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도구를 가지고 같은 산에서 터널 작업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반대쪽 방향에서 작업하고 있음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보고 두 사람이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결국 동일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다보니 두 사람이 지향하는 바가 결국 어떤 하나의 목표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심이 생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두 사람이 뚫는 터널이 언젠가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두 사람이 하나의 산을 서로 반대편에서 오르고 있다면 두 사람은 과연 정상에서 만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다.

인간성에 관련된 부분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먼저 벌어진다. 뒤의 '옮긴이의 말'에 잘 정리되어 있지만, 촘스키는 '인간성'이라는 어떠한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또는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방식이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주전공인 언어철학의 문제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그는 어떠한 문명의 어떠한 어린이라도 언어를 배울 때에 제한된 정보로부터 고도로 복잡하고 조직된 지식을 이끌어내는 도식 체계(schematism)를 가지고 접근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도식체계야말로 인간성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인간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인간성의 요소가 있으며, 그것은 어떤 하나의 구체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푸코에게 인간성의 개념은 미심쩍은 것이다. 푸코에게 인간성은 어떤 시대상과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의 틀이 반영된 인식론적 지표에 불과하다. 즉 인간성은 어떤 하나의 과학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어떤 특정 유형의 담론이 신학, 생물학, 역사학 등과 어떤 관계 혹은 갈등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것이며, 매우 가변적인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여 말한다면 촘스키는 관념론적 입장에 서 있으며, 푸코는 경험론적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며, 내 주전공인 교육학 식으로 (거칠게) 말하자면 촘스키는 객관주의적 입장에 서 있고, 푸코는 구성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입장은 그들이 정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두 사람의 의견은 충돌되지만, 예를 들어 다음의 부분만 살펴보아도 그러하다. 촘스키는 어떤 실체적인 정의에 입각한 긍정적인 미래 사회가 존재할 수 있으며, 개혁가나 혁명가는 그 정당성에 입각하여(즉,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정당성에 입각하여) 혁명이나 투쟁을 행한다고 보았다. 반면 푸코는 정의라는 개념은 권력을 잡은 계급 혹은 권력을 잡으려는 계급이 내놓은 일종의 구실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혁가나 혁명가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하여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 즉 권력을 잡기 위해 혁명이나 개혁을 행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푸코는  "만약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과연 사람들이 정의라는 말을 사용할지 확신이 안 선다"라고까지 말한다. 반면 촘스키는 인간성의 내부에 절대적인 기반이 있다는 자신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의 관념이 인간성의 바탕에 깔려 있다고 말한다.

푸코: 하지만 저는 프롤레타리아가 계급투쟁을 하는 목표가 더 큰 정의를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현재의 지배 계급을 축출하고 스스로 집권하게 되면 모든 계급의 권력을 억누르려 들 겁니다.
촘스키: 그러니까 미래를 위한 정당화라는 거지요.
푸코: 물론 그런 정당화를 내세우겠지만, 실제로는 정의보다 권력에 더 관심이 많을 겁니다.
촘스키: 하지만 정당화는 언제나 정의를 내세웁니다. 그렇게 해서 성취된 결과가 정당한 것으로 주장될 수 있어야 정당화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레닌주의자든 누구든 감히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 프롤레타리아는 권력을 잡을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을 화장장으로 보낼 권리가 있다." 만약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집권의 결과라면, 그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1장. 인간의 본성_정의와 권력 中 (p.79)

이 부분은 이 토론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는 극명한 지점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우리도 숙고해 볼만한 부분이다. 푸코는 프롤레타리아건 부르주아건 간에 계급투쟁은 정의의 문제라기 보다는 권력의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촘스키는 계급투쟁이 헤게모니 싸움이라고 해도, 그것은 정의의 이름을 걸고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당한 것, 정의로운 것으로 주장되어야(즉,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인간성 내부에 있는 정의의 관점과 부합하여야) 정당화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거칠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푸코의 입장에서는 예를 들어 어떤 계급이 권력을 잡는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한 계급의 지배가 되고, 각 개인이 그것에 영속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즉 그의 관점에서는 계급투쟁이란 감시의 주체가 바뀌는 것에 불과한 것이며, 목자권력이 바뀌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5장과 6장을 보면). 반면 촘스키의 입장에서는 어떤 계급투쟁이 진정한 정의를 바탕으로 정당성을 획득한다면, 그 계급투쟁은 정당화될 수 있으며, 그 집권은 긍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정의란 "모든 사람을 화장장으로 보낼 권리가 있다."라고 말해지는 것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칠게라도 다음의 몇 가지를 이에 연결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니 내가 우리나라에서 진보 세력의 집권을 바란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기 때문인가. 혹은 그것이 나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가.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 혹은 좋은 사회를 말할 때의 그 좋은 사회란 어떠한 형태의 사회인가. 그 집권한 세력이 내가 원하는 사회와 다른 모습의 사회를 구축하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푸코 식대로 좋은 사회란 것은 어떤 허구에 불과한 것일까. 어떠한 지배 세력이든 감시와 국가이성을 가지고 개인을 옭아맬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것을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 - <진보집권플랜> - 과도 연관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진보가 집권을 해야 하는 것은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함인가. 우리는 그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진보의 집권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회의 모습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푸코가 암시하는 대로 진보의 집권이란 환상에 불과한가. 혹 그것이 환상이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너무 1장의 두 사람의 TV토론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른 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2장은 촘스키의 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촘스키와 프랑스 언어학자 로나 미추와의 대담이 이루어지는데, 촘스키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비판을 허용하지만, 경제적 모순에 대해서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의 이중적 모습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3장에서는 촘스키와 로나 미추와의 대담이 계속 이어지는데 촘스키의 언어철학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1장에서 이루어졌던 푸코와의 대담을 요약하여 촘스키 자신이 정리하고 있다. 4장은 1976년 이탈리아에서 폰타나와 파스퀴노에 의해 이루어진 푸코의 대담이며, 담론의 지배(담론에 작용하는 권력의 문제), 감시와 억압 등의 푸코의 개념들을 푸코 자신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또한 푸코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를 의미하는 국지적 지식인과 전통적인 의미에서 보편적인 가치와 의미를 담지하는 저술가로서의 보편적 지식인을 구별하며, 진리와 관련된 이 두 가지 타입의 지식인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5장은 1978년 푸코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으로 그는 이 강연에서 원시 기독교가 목자(牧者)권력을 행사하게 된 역사적 기원 및 방식과 이러한 목자권력이 그리스 사상과 이질적인 것임을 밝히며, 이러한 목자권력 체제가 현재의 국가이성과 단속 이론(경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6장은 푸코의 간단한 성명으로 이 성명에서 그는 정부의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들의 권리, 그리고 그러한 권리에 기반한 개인들의 연대를 주창한다.

다른 부분들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간 가지고 있던 의문의 실마리를 조금은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촘스키의 여러 저술들을 보면서 그의 언어철학에 대한 생각들과 정치에 대한 발언들이 어떻게 연관될까 궁금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가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본바탕 생각들이 그의 언어학이나 정치적 저술 모두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언어학 역시 상당히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촘스키와 푸코의 사상에 담긴 기본의 밑받침을 살펴볼 수 있는 대략적인 개론서의 역할로도 손색이 없으며, 한편으로 이 두 사람의 사상이 충돌하는 지점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