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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의 숙명들.

The Book | 2010. 11. 21. 22:23 | Posted by 맥거핀.
책을읽을자유로쟈의책읽기2000-2010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 독서 > 독서일반
지은이 이현우 (현암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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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서평단 리뷰의 하나로 썼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의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 본다. 지젝의 책 <시차적 관점>과 다른 지젝의 책 몇 권, 그리고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책(혹은 그를 다룬 책) 사이로, '한 그루의 사과나무'라는 제목과 함께, 이현우라는 이름이 보인다. 우리 시대의 성실한 북리뷰어, 혹은 '인터넷 서평꾼' 아니면 '서평가' 로쟈의 본명. 한 그루의 사과나무? 출판된 책 같지는 않고, 혹시 기약없는 출판을 기다리고 있는 책인지, 아니면 그의 그저 노트인지도 모르지만, 왠지 이 사진은 서평가의 숙명같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서평가의 숙명이란, 결국 언젠가 출판될 자신의 책을 기다리는 것. 그 책의 서평을 써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다른 경우에도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수없는 영화를 본 영화평론가들은 언젠가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정성일이나 김정 등 여러 평론가들의 영화를 우리는 접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요리를 맛본 미식가는, 자신만의 완벽한 요리를 언젠가 만들어낼 것을 꿈 꿀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책을 읽고, 그에 대해 글을 써온 서평가는....누군가의 글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읽는 것을 고대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재능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문제다. 재능이 없어도 꿈 꾸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은 숙명과도 같다.


아마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겠지만, 로쟈의('이현우의'라고 해야겠지만,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이름이니 이렇게 부르도록 하자) 이 책 <책을 읽을 자유>에는 아직 탄생하지 않은 여러 복잡하고도, 흥미로워 보이는 주제를 가진, 미래의 책들이 등장한다. 로쟈가 앞으로 쓰게 되거나, 혹은 결국 쓰지 못하게 될 몇 권의 책들. 언젠가 그 책들이 써질 수 있을까? 글쎄. 뒤의 발문에서 신형철이 그를 '기계'라고 표현한 내용도 있고, 로쟈 자신의 약간은 자조적인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앞에는 그가 읽는 속도의 몇 배나 될 정도의, 그가 아직 읽지 않은, 그러나 그가 어쩔 수 없이 손을 대고야 말, 수많은 책들이 등장할 것이고, 그는 그 책을 읽고는 무언가 몇 개의 짧은 코멘트들, 혹은 긴 논의들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분명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가 쓰고자 하는 새로운 주제를 가진 책들의 출판 시기는 조금씩 유예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만의 책을 쓰고자 하는 욕망과 더불어, 모든 서평가에게는 또다른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조지 오웰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서평가의 일단을 밝힌 바대로, 어쩌면 대다수의 서평가들은 서평을 쓰는 것을 괴롭게 생각하며, 최대한 그것을 마감이 다가올 때까지 미뤄두려고 하고, 또한 그 책들의 상당수를 쓰레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좋다, 나쁘다의 기준을 내린 후에는 그것을 합리화하는 작업을 재빠르게 해내는 족속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맞다고 해도, 적어도 확실해 보이는 한 가지는, 서평가들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아마도 죽을 때까지도 한 권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 책은 정말 쓰레기군. 이제 다시는 책 같은 것은 읽지 않겠어."라고 결심한다해도, 그의 흥미를 자극할 다른 책은 그가 말하는 그 순간에 어디선가 출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위대한 저작이 말이다.

그럼 서평가의 숙명을 생각해 보았으니, 그런 서평모음집을 읽는 사람들의 숙명을 생각해보자. 서평모음집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두 가지 부류일 것이다. 소개된 그 책들을 읽을 마음이 있는 사람과 그 책을 읽을 마음이 없는 사람들. 누군가는 읽지 않고서도, 그것을 읽었다는 지식을 내세우려, 혹은 읽었다는 충만감을 느끼려 이러한 서평모음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면 다른 누군가는 앞으로 읽게 될 책들의 어떤 길잡이로 생각하고 이러한 책들을 볼 것이다. 즉 앞으로 읽게 될 책들의 어떤 맛보기로. 아무튼 확실한 것은, 전자이든 후자이든 간에 서평모음집을 읽는 사람들은 머리 속이 꽤나 복잡해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또한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그가 별로 관심없던 주제들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내용을 머리 속에 단편적으로나마 집어넣게 될 것이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앞으로 그가 사게 될 책들의 목록을 생각하고, 그 가격을 어림잡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전자의 사람이나, 후자의 사람이나 이 책 <책을 읽을 자유>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전자의 사람들은 인문학적인 교양에다, 지젝, 데리다, 라캉, 고진 등 주요 현대철학자들의 간단한 이론적 개괄까지 머리 속에 넣게 될 것이고, 후자의 사람들은 어떤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책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 책은 전자의 사람들보다는 후자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신형철이 얘기한 바대로, 로쟈 서평들의 강점은 두 권 이상의 책을 무리없이 연결하는 것이다. 즉 로쟈는 어떤 주제에 대한 개괄적인 책들에서부터 심화된 책들까지 부드럽게 독자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는 그 주제에 있어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책들도 은근슬쩍 끼워넣는다. 그리고 책의 내용에서부터 번역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각 책들을 짚어 나간다(이 책의 또다른 강점은 로쟈의 번역에 대한 지적이다. 로쟈만큼의 인문학적 내공을 갖춘 번역가들이 많지 않은 탓이다 -). 그것은 아마도 로쟈의 오랜 독서 내공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누구나 쉽게 흉내내기란 어려운 것이다.

글쎄.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기에 약간 주저되는 부분은 있다. 전체적으로 주제별로 서평들이 잘 분류되어 있으나, 철학이나 문학비평 등 일부의 주제들로 편중된 경향이 있고, 일부의 글들은 너무 깊게 파고 들기도 하고, 혹은 너무 훑고 지나가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발표되는 지면들이 달랐던 탓으로 보인다. 그는 책의 앞 부분에서, 서평꾼과 서평가, 서평자와 그들이 쓰는 리뷰를 구분하고 있는데, 지면의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리뷰의 급도 다르며, 내용적인 밀도도 분명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주간지, 문학비평지, 신문, 인터넷 공간 등 여기에 실린 글들이 다양한 매체에 수록된 것이었던 것 만큼, 약간은 산만한 경향이 있고, 중첩되는 내용의 글들도 있다. 즉 그만큼 책의 전체적인 구성의 밀도는 떨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괜한 트집잡기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로쟈의 책읽기 2000-2010'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는 대로, 이것은 그저 지난 10여 년간 로쟈가 성실하게 써 온 독서일기들을 묶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가 요구하는 대로, 다양하게 써온 것이 아마도 로쟈의 잘못은 아닐 터. 그저 독자는 취사선택하여 잘 읽으면 될 일이다.

어쩌면 나의 이 볼멘소리는 다른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다른 것이란, 무엇보다도 로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리송해 보인다는 물음이다. 신형철은 "예나 지금이나 로쟈는 "회색인"이다"라고 썼고, 또 "그러나 나는 인간 이현우가 아니라 필자 로쟈에 대해서밖에 모른다. 인간 김해경이 필자 이상李箱으로 변신한 뒤 김해경을 거울 속에 가둬버린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로쟈의 글에서도 이현우의 모습은 흐릿하다."고도 했다. 내가 보기에도 로쟈는 자신의 여러 글들에서 모호한 입장들을 내비친다. 그것도 아주 군데군데에서만. 그것은 분명 이 서평집이라는 책의 속성에서 기인된 문제일 것이다. 영화평론가들이 영화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음악평론가들이 객석 한 귀퉁이에 앉아 있는 것처럼, 서평가들은 책 뒤에 숨어서 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신을 아주 조금씩만 내비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로쟈의, 아니 이현우의 책들을 어서 보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그가 자신의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에 어서 굴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책을 읽을 자유'가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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