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 류승완

Ending Credit | 2010. 11. 9. 23:23 | Posted by 맥거핀.


(어쩔 수 없는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제목에서 말하는 '부당거래'란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어떤 거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문제는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커넥션'들은 불법과 범죄와 폭력과 비리로 점철되어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아울러야만 그 거대한 부당거래의 끄트머리라도 조금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을는지 모른다. 즉 이것을 '위에서 내려다보아야만' 이것이 부당거래라는 것을 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스크린 밖으로 나와서 차가운 관객이 되어 이들을 들여다보아야만 이것이 부당거래라는 것을 안다. 부당거래를 하는 자들은, 이것이 부당거래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건설회사 사장의 손에서 검사의 손에서 넘어간 시계가, 다시 기자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의 역방향으로 검사는 사장을 위해 적당히 누군가를 '손봐주고', 기자는 검사를 위해 기사를 써준다. 그들은 그저 어떤 것을 주고받는 '정당한' 거래를 한다. 단, 여기서의 정당함이란 그로 인해 쓰러지게 되는 스크린에서 밀려나 있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스크린 외곽에 존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스크린에서 밀려난 자들(아마도 상당수의 관객들)이 '위에서 들여다보았을 때' 이것은 부당거래가 된다.

아니, 여기서 다시 복잡한 스토리를 반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복잡한 이야기들보다는 그저 다른 얘기 몇 가지를 하고 싶다. 먼저 이 영화의 뚜렷한 장점들. 스토리를 죽 써내려가는 것으로 200자 원고지를 몇 장이나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의 스토리는 꽤나 복잡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스토리의 복잡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 묘한 마법을 부린다. 그 마법은 몇 가지로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먼저 한 가지는 캐릭터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스토리를 캐릭터들의 관계 중심으로 구축함으로써 스토리를 최대한 캐릭터에 밀착시켜 버린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각 캐릭터를 정지 화면으로 잡고, 간단한 캐릭터 설명을 자막으로 붙이는 것은 이 영화를 캐릭터 중심으로 보라는 감독의 친절한 부연설명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그 캐릭터들의 특징을 잡는 것이나, 각 캐릭터들의 관계를 한 가지의 아주 인상적인 숏이나, 대사로 처리해버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팜플렛에 나온 다음의 대사들. 주양 검사(류승범)의 "한번 까드려야 내가 뭐하는 놈인지 아시겄어?!!" 나, 장석구(유해진)의 "절대 나 혼자 못 죽는거 알죠?"같은 것들을 보면, 그 캐릭터의 어떤 특징이나, 관계 같은 것들이 오롯이 드러난다. 즉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도나 사건들의 관계를 설명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만든다. 이건 절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영화는 초반에 상당한 리듬감도 덤으로 얻게 된다. 많은 사건들이 연이어 지나가고, 여러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등장함에도 관객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초반에 만들어놓은 캐릭터들의 힘이고, 처음에 구축한 리듬의 덕이다. 즉 이 영화는 에너지가 넘쳐나고, 그 에너지들이 영화에 지속적으로 힘을 부여하지만, 그것이 너절하게 이어져있다거나, 혹은 뭔가 불안하게 엮어져 있다거나 하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도리어 상당히 '웰메이드'하다는 느낌을 준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은 지금껏 어떤 불균질하게 넘쳐나는 에너지로 승부하는 것들이었지, 이 영화처럼 매끄러움으로 승부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예를 들어 최동훈 감독이 <타짜>나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준 매끄러운 세공술사 같은 느낌이 있다.

어쩌면 이것은 류승완 감독의 공이라기 보다는 시나리오를 쓴 박훈정 작가의 공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종내에는 관객이 어느 캐릭터도 좋아할 수 없도록, 혹은 조금이라도 의지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몇몇 캐릭터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즉 대부분의 대중영화들은 관객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끼워넣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관객이 온전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는 없다. 아마도 그래서 에필로그와 같은 영화의 마지막 씬들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류승완 감독이 <무비위크>와 한 인터뷰를 보면 봉준호 감독이 대호 형사(마동석)가 죽는 장면에서 영화를 끝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도 봉준호 감독의 충고를 따랐더라면, 분명히 관객들에게는 덜 환영받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 영화와 같은 캐릭터들의 집합이라면, 마지막의 친절하게 정리하는 장면들은 대중영화에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즉 마지막의 몇몇 씬들은 대중적인 결점에 발라주는 일종의 호랑이 연고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금은 과잉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조금은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과도 관계된 것처럼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이 전작들에 보여줬던 어떤 여러 단점 중의 하나는 작위적인 구성이 자꾸 엿보인다는 점이었다. 물론 영화란 (어느 정도는) 작위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작위성의 구렁텅이에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기어나와보려고 버둥대는 것이 영화의 숙명이고, 이것을 어떤 핍진성이라고 부른다면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런 핍진성이 조금은 의도적으로 결여되었다고 보이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 불평하는 자들에게 에라 엿먹어라 라는 심정으로 밀어붙인 것이 한편으로는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아니었겠는가.) 이번에는 그러한 것들이 최대한 자제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몇몇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이 있다. 다음과 같은 몇 개의 질문들. 살인범 이동석의 아내는 왜 그런 캐릭터로 설정되었는가(물론 이 질문은 다음의 질문과 연관된다 - 최철기(황정민)는 왜 그런 이동석을 '찜'하는가), 대호 형사의 장례식 장에서 다운 증후군 아이는 왜 스치고 지나가야 하는가, 황정민이 마지막에 울부짖는 씬에서 굳이 그런 음악을 깔아야만 했을까....등등. 이 첨가물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그러나 아무튼 이것은 <PD수첩>도 아니고, <시사매거진 2580>도 아니고, <뉴스 후>도 아니다. 그저 잘짜인 대중영화이다. 아니, 그저 이 모든 내용이 단지 영화에 불과하다는 닭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대중영화에는 대중영화에 맞는 문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과잉이 가져다주는 효과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그럴까. 그러한 과잉은 다른 어떤 것을 약간은 덮으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의 어떤 묘한 패배의식이나 냉소주의 같은 것들과 연관된 부분이다. 결국 영화가 마지막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결말은 사실 친절한 듯 보이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냉소적이다. 요즘말로 하자면, 깃털들만 다 부러지고, 몸통은 여전히 건재하다. (물론 누군가는 이 말에 이렇게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잖아요! 나의 대답은 그저 위의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PD수첩>이 아니다.) 어쩌면 그저 우리 모두는 공범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몇몇 선택들이 있다. 처음 장면의 지하철 역과 쏟아지는 뉴스와 신문들의 조합. 살인범 이동석을 다시 비틀어버리기. 주양 검사와 장인과의 마지막 대화 같은 것들.  

꼭 이것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사실 나는 류승완 감독의 능력이 여전히 의심스럽다. 사실 박훈정 작가라는 시나리오 블루칩에(이 매끄러움은 분명히 류승완의 공이라기 보다는 박훈정의 공이다), 주연배우들로 한 연기하기로 소문난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의 쓰리 콤보 조합에, 요즘 충무로에 연기 좀 한다 싶은 명품 조연들은 거의 모아놓은(한국영화들을 좀 보아온 분들이라면 얼굴들 찾기가 재미가 쏠쏠할 거다. 심지어 안길강은 대사 한 마디 없다) 이 영화이고 보면, 거의 실패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오랜만에 평론가도 관객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류승완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절대 이 영화가 구리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말씀.



- 2010년 11월, 서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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