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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PiFan.

Interlude | 2010. 7. 27. 01:32 | Posted by 맥거핀.




지난 주 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본 2편의 영화에 대한 간단한 감상. 늘상 그렇듯이, 기대하고 본 영화는 기대감에 못 미치는 것 같고, 별 기대감 없이 본 영화는 꽤나 의외의 만족을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이 '기대감'이라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본 영화는 요시다 다이하치의 <퍼머넌트 노바라>. 묘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자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 이상한 마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몇 명 있기는 한데, 모두들 그다지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 술 퍼마시고, 여자를 때리거나, 도박에 미쳐 살거나, 그도 아니라면, 전신주에 도끼질을 해댄다. 사실 여자들도 조금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바람만 피우는 남편을 응징하는 마사코도 그렇고, 계속 얻어맞으면서도 여러 남자들을 계속 만나오는 토모도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빠져 보인다. 유일하게 정상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주인공 나오코뿐. 일본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지고 보면) 제일 이상했던 것은 여왕도, 토끼도, 쌍둥이도 아닌, 앨리스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장점은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이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이다. 영화의 내용으로만 보면, 거의 막장드라마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연이어 일어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자라, 감독은 다시 숨겨진 이야기를 슬며시 드러내보이며, 영화에 또다른 색채를 덧씌운다. 묘한 분위기와 재치있는 대사들, 그리고 영화의 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감독의 능숙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 단점이라면, 그래서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조금은 모호하다는 것. (부천시청)


두 번째 본 영화는 도미닉 제임스 감독의 <다이>. 글쎄. 이 영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소리를 해주기는 힘들다. 정신과 병동에서 깨어난 6명의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범인에 맞서서 생사를 건 게임을 해야한다는 설정인데, 생각만큼 훌륭하지 못하다. 이런 류의 영화는 아마도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참신하거나, 혹은 (이야기의 만듦새가) 매끄럽거나.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른채 낯선 곳에 갇히는 사람들이 어떤 범인 또는 보이지 않는 적과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은 이미 <쏘우>, <큐브> 등의 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던 내용인 데다가, 그것에 참신함을 부여해야 할 범인 캐릭터마저도 어딘지 모르게 뜨뜻미지근하다. 거기다가 이야기의 내용과 연결,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에는 왜 그렇게 구멍이 많은지. 예를 들어, 주인공이 각 사람들에게 죽이는 방법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대목에서는 계속 헛웃음이 난다. 왜냐하면, 그것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저런 방식의 지겨운 설명으로 밖에 처리할 수 없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런 류의 영화에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는, 게임 규칙의 치밀함이나 죽음의 스릴 강도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는 해도(그래서 어쩌면 <쏘우>가 단지 그 죽음의 스케일만을 키우는 속편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내세우는 메시지는 쉬이 이해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중심 이야기인 '죽음을 어떤 우연에 맡긴다'는 것. 글쎄. 완벽한 우연이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한가지로, 왜 주사위는 꼭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쓰인 것만을 사용해야 하지? 2부터 7이 쓰이면 안되는 건가? 아니, 차라리 12면체 주사위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즉 그 주사위를 '선택'했다는 그 아주 작은 한 가지의 사실도 '우연'이라는 것의 존재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우연'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물론, 죽음의 이유보다는 죽음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감독으로서야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아예 <쏘우>처럼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좋아'라고 처음부터 선언하던가, 끝까지 그 '우연'에 대해 항변하는 건 뭥미? (프리머스 시네마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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