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길, 정재훈

Ending Credit | 2010.07.02 00:44 | Posted by 맥거핀.

참 이상하게 진행되는 다큐멘터리라 생각했다. 이상하다 못해 괴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늘어선 연립들을, 양 옆에 펼쳐진 집들 사이에 난 길을 고정된 카메라는 몇 분간 그대로 바라본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 전환. 길 아래로 어떤 할머니가 힘겹게 내려간다. 카메라는 그 뒷모습을 무리한 줌으로 당겨서 찍는다. 너무 당기다 못해, 무너진 픽셀이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다시 거칠게 화면 전환. 다시 아까 그 연립. 이번에는 밤이다.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들리고, 연립의 5층에는 유일하게 불켜진 창문이 보인다. 카메라는 다시 말없이 그 불켜진 창문을 응시한다. 그러나 그 불켜진 창문에서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어떤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화면 전환. 이번에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뛰어논다. 아주 오래, 지치지 않고 뛰어논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카메라는 그 아이들을 비춘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이렇게 오랫동안 바라본 일이 있던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것도 불꺼진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통해서 말이다. 정말,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경사진 길을 아이들은 쉼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그리고 웃으면서 쫓고 쫓긴다. 쫓겼던 아이들이, 쫓기 시작하고, 쫓았던 아이들이, 쫓기기 시작한다. 계속 웃으면서. 여전히 줌은 반복된다.


그리고, 영화는 급속히 후반부로 넘어가 버린다.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몇몇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 결정적인 몇몇의 차이점. 영화 후반부에는 예의 그 줌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기는 한다. 바로 조금 전의 장면에서만 해도 사람을 경계하며 움직이던 고양이의 사체. 그 줌 된 화면속에 사체 위로 날파리들만 어지럽게 움직인다. 아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고양이 뿐만이 아니다. 화면 속에서 움직이던 할머니와 아이들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을 극명하게 대비해주는 장면. 다시 어둠 속이다. 이제 더 이상 불켜진 창문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검은 암흑 속에서 오로지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러나 이 개 짖는 소리마저도 묘하게 증폭되어 있다. 아니, 나의 착각인가. 암흑 속에서 개 짖는 소리는 유달리 크게 들리니까 말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에서 문이 쾅 부딪히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 역시 나의 착각일까. 그리고 계속 모든 것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아니. 움직이는 것은 있다. 더 이상 줌 하지 않는 화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기계. 물론 이것은 잘못된 진술이다. 기계 같은 것이 '살아'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지붕을 무너뜨리고, 건물벽을 부수는 저 기계는 실제로 이 마지막에서 '마치 산 것처럼' 움직이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마지막에는 필연적으로 질문이 생긴다. 저 기계 외에, 살아 움직이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까지가 이 영화 <호수길>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괴이하게 느껴졌던 이 처음의 장면들이 마지막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 줌들을 보고나서야 마지막에 질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 다시 정확하게 질문하자면, 어디로 보내진 것일까. 정성일 평론가의 말대로, 아마도 그 줌들은 '이 아이들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 아이들을, 노인들을, 사람들을 기억하라는 감독의 필사적인 외침을, 그 무너진 픽셀이 선명하게 보이는 줌은 담고 있다. 그리고 물으라는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보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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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거의 기교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 영화는 관객을 마지막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계속 켜켜이 장면들을 쌓는 영화다. 그 줌의 활용은 물론이거니와, 사운드의 활용 역시 심상치 않다.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차이점을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후반부에 들어서 사운드와 화면과의 불일치가 심해진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암흑 속에서 개의 짖음과 같이 특정의 사운드가 증폭되기도 하고, 화면과 전혀 상관없는 효과음이 느닷없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불꽃의 이미지를 슬며시 끼워넣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마지막에 묘한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그 공간을 매우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할머니가 지팡이를 집고 힘겹게 걸어가고, 아주머니들이 잡담을 나누는 일상의 평범한 공간. 그 공간들은 그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순간, 거대한 유령처럼 변하여 관객들을 습격한다. 공간은 순식간에 곧 무엇이라도 나타날 듯한 이상한 폐허가 되고, 그 속에 유일하게 기계는 살아 꿈틀대며, 조금씩 폐허를 확장해 나간다.

평론가 허문영은 지아장커 감독의 말을 빌려, 다큐멘터리를 두 종류로 나눈 바 있다. 그 하나는 기다림(wating)의 다큐멘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구축(making)의 다큐멘터리이다. 그리고 지아장커가 구축의 다큐멘터리를 보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허문영은 덧붙인다. "이 말은 적어도 지아장커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준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대상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록은 언제나 기록하는 자를 함께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 <호수길> 역시 굳이 나누자면 구축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줌들의 활용이나, 사운드와 화면의 불일치, 혹은 끼어든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장면을 가지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픽셀이 무너질 정도의 줌으로 아이들을 잡는 장면에서, 어느 순간 화면이 놀라울 정도로 선명해진다. 놀이터의 노는 아이들을 잡는 장면들에서 아이들을 잡는 크기는 그대로인데, 화면은 깨끗해졌다. 좋은 카메라를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카메라가 훨씬 더 대상 가까이로 다가갔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아이들은 카메라로 다가와서 웃으며 카메라를 가리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것의 의도는 사실 명백하다. 기록하는 자와 기록의 대상이 처음보다 훨씬 물리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심리적으로 가까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편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잘 구축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은 분명히 영화 처음의, 멀리 줌으로 잡은 장면들보다 관객들을 그 아이들에 더욱 가깝게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그 다음 장면들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것에 관객들이 가지게 될 감정은 거의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러한 구축의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의 대상보다 기록하는 자일지도 모른다. 다시 지아장커의 말을 상기하자. "기록은 언제나 기록하는 자를 함께 기록하기 때문이다." 즉, 보다 중요해지는 것은 기록하는 자의 태도, 혹은 위치이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감독은 몇 번이나 '우리 동네'라는 말을 썼다. 감독은 이 동네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그 동네를 찾아간 것이 아니다. 감독은 그 동네의 주민이었다. 은평구 응암 2동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 동네. 다른 어떤 설명을 가타부타 붙일 필요 없이 이 영화는 우리 동네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물론 동네의 모든 집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은평구 응암 2동은 여전히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호수길'도 존재할 것이고, 어쩌면, 그 길 옆에는 진짜 인공호수라도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예전의 그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그 동네를 더 이상 '호수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을 더 이상 '우리 동네'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정밀하게 축조된 마지막의 SF적인 공포는 아마도 감독의 내면의 반영일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덧붙였다. 그 마지막의 불꽃 이미지는 그냥 '악!'같은 거라고. 그 비명. 악, 악, 아악.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감독은 말했다. 어느 날 동네에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를 찍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 우리는 어쩌면 이 기이한 낯선 다큐멘터리를 이런 이야기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동네에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마을 한 가운데에 거대한 기계를 던져 놓고 그것을 조종해 집을 하나하나 부수어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 의해서 어디론가로 보내졌고 기이한 표정없는 사람들이 새로 생겨난 집들을 하나하나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가면을 쓴 사람들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그것에 신경쓸 틈이 없다. 곧 그들은 우리를 공격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 좋은 영화를 보게 해주신 인디포럼 및 알라딘 관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 2010년 6월, 시네코드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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