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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임상수

Ending Credit | 2010. 5. 26. 01:12 | Posted by 맥거핀.

(미리니름 있음)


임상수가 만든 이 서늘한 그림에는 출구가 없다. 마치 이 마지막은 복수가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그것을 복수로 본다면 말이다. 임상수는 설명을 시도한다(<씨네 21> 753호 '임상수 인터뷰'). 은이(전도연)의 마지막 시도는 나미를 괴물로 만드려는 시도였다고 말이다. 그리고 임상수는 싸늘하게 덧붙인다. 이를 봄으로써, 아마 나미는 후에 괴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글쎄.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이런 친절한 설명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면 좀 좋으련만.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 냉소하는 임상수의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에, 이 말을 그대로 믿기도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아니, 임상수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나미를 괴물로 만드는 것이 무슨 복수가 된다는 말인가. 괴물이 넘쳐나는 세상, 괴물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그리고 어쩌면, 훈이(이정재)와 해라(서우)는 나미가 괴물이 되는 편이 더 좋을는지도 모른다. 훈이와 해라는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괴물인 편이, 이 세상에서 더 살아남기가 쉽다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미는 알아서 괴물이 되줄 터였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자각하고, 자기를 위치에 맞게(혹은 그 위치에서 살아남도록) 만들어가는 법을 배우던 이 아이가 괴물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해서, 어쩌면 은이가 살아있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은이가 마지막 선택을 행함으로써, 나미가 괴물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그것이 은이가 행한 복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묻지만, 그것은 복수였을까. 

은이가 행하는 이 방식은, 몇 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은이는 말한다. 찍 소리라도 내보고 싶다고 말이다. 군부독재 시절,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찍 소리를 내보려고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 인해 이 정권들이 어떤 반성에 이르렀는가라는 부분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죽음들이 의미없는 죽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혹은 그것을 바보같은 시도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아무튼 간에 그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그것을 어떤 복수라고 부를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의미있는 어떤 시도였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 시도의 한 가지 부분은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독재정권의 신민으로 살지 않겠다는,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바보같은 인간으로 남지 않겠다는, 혹은 기계부품과 같이 취급되며 살아가지 않겠다는 그런 선언.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그런 선언. 그래서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신문에 한줄짜리 기사로라도 취급되지 않아도, 그들은 자신의 몸에 불을 그었다.

아니, 나는 은이가 노동적인 투쟁의 일환으로 그런 마지막을 택했다고 강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임상수가 파놓은 이 출구없는 마지막에서 조금이라도 기어나와 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여러 리뷰들에서 지적하였듯이 임상수의 오프닝 씬은 인상적이다. 떨어지는 여자를 바라보는 무표정한 시선들. 그들의 무표정한 시선들에는 이유가 있다. 일을 해야 하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차피 저 여자가 비워놓은 자리에는 누군가가 들어갈테니 말이다. 그리고 은이는 유아교육과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곧 대저택의 하녀로 채용되고, 다시 그 자리는 마지막에 가서야 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보면, 그 자리 역시 다시 누군가가 채우고 있다. 마지막에 주목해봐야 할 것은 아이의 시선이나, 훈이나 해라의 우스꽝스럽고도, 그로테스크한 행동들이 아니라, 은이와 병식(윤여정)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또다른 하녀들이다. 그 하녀들의 그 무표정한 시선들. 그리고 임상수는 훈이의 입을 빌어, 해라마저도 거의 하녀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기까지 한다. 훈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은이나 병식은 집안일을 해주는 하녀이고, 해라는 아이를 낳아주는 하녀이다. 훈이는 선심쓰듯 말한다. 원한다면 언제든 애를 낳게 해줄께. 그리고 해라와 해라의 어머니(박지영)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참이다. 애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낳아야 한다고 되뇌면서.



이 타의로 빚어진 하녀들이 넘쳐나는 세상, 그래서 어떤 하녀가 곧 다른 하녀로 대체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어쩌면 은이의 마지막 선택은 그저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더 이상 하녀로 남지 않겠다는 하나의 선언 말이다. 그 선언과 조금은 비슷하지만, 또 무엇인가 달라보이는 것에 하녀 병식의 행동들이 있다. 경멸하는 것. 겉으로는 정중하게 행동하지만, 돌아서서 경멸하고 욕하는 것. 이른바 '아더메치'. 그리고 이 방법으로 병식은 아마도 그 긴 세월의 모욕을 버텨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마도 이 방법은 이 세상에서 은이처럼 선언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버텨내는 방식일 것이다. 경멸하는 것. 예를 들어 인터넷 게시판에 넘쳐나는 수많은 경멸들. 

그리고 이 경멸은 왠지 최근의 어떤 사건을 자꾸 떠올리게 만든다. 한 대학에서 여학생이 나이든 청소부를 모욕했고, 네티즌들은 그녀에게 경멸을 퍼붓는 것으로 대응하였으며, 급기야는 그녀의 '신상을 털었다'. 이를 떠올리게 된 것은 거기에 스며있는 계급성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이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것에 담겨 있는 계급의 문제가 한 몫을 했다. 예를 들어 만약 이것이 나이 어린 청소부와 나이 든 청소부 사이의 문제였다면, 이는 문제거리도 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경멸은 또 한편으로 보면 위험한 부분이 있다. 경멸은 그 자체에 일종의 계급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녀 병식의 경우. 병식은 영화 초반부에 훈과 해라를 노골적으로 경멸하지만, 동시에 은이도 경멸한다. 즉 병식은 훈과 해라보다는 자신이 낮은 위치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동시에 은이보다는 자신이 높은 위치라는 것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이것의 위험, 즉 한 마디로 말해 인간이 인간을 경멸한다는 것에 내재된 무언가의 위험성. 다시 현실로 돌아와, 여학생에 대한 경멸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그것은 어떤 도덕이라는 것의 형태로 포장되지만, 그것이 어쩌면 현대 사회의 어떤 부분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때로는 그 게시판에 넘쳐나는 수많은 경멸들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 경멸을 경멸하는 나도 무서워진다.

아무튼 임상수가 그려낸 출구없는 사회는, 매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고, 우리는 은이처럼 할 수 없어서, 그저 경멸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도 임상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 한도 내에서 고결한 삶을 산다. 참을 수 없는 기억이 생겼을 때조차 죽음으로써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고자 한다. <하녀>는 고결함에 관한 영화다."(<씨네21> 753호 '임상수 인터뷰' 중) (그래서 어쩌면 임상수는 은이를 거의 어린아이와도 같은, 아니 어린아이도 아는 것조차 모르는 그런 캐릭터로 그려냈는지도 모르겠다. 해라의 어머니가 전도연을 떨어뜨릴 때, 쟤들은 당연히 저러겠지, 왜 은이는 일부러 저러는 것도 모를까라고 생각한 나는, 이미 고결해지긴 틀렸다.) 그렇다 해도 나는 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은이처럼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고결함을 지키거나, 병식처럼 경멸하거나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나는 그저  출구없는 그림의 서늘함이 선뜩하게 느껴질 뿐이다.



덧. 이 영화는 나름 괜찮지만, 괜히 서스펜스니, 에로틱 스릴러니 하는 말을 갖다붙여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영화는 원작 <하녀>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괜히 리메이크 어쩌구 해서는 또 불필요한 욕을 먹고 있다. 이건 그냥 임상수의 새로운 <하녀>다.




- 2010년 5월. 씨너스 단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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