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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Viewfinder, 김 정

Ending Credit | 2010. 4. 30. 01:27 | Posted by 맥거핀.




이 영화는 제목 <경>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경치의 경景, 경계의 경境, 거울의 경鏡,... 그리고 세상이란 창을 통해, 타인이란 거울을 통해, 마침내 자신을 찾게 되는 우리, 주인공의 이름이다'라고. 영화 <경>의 영문 제목인 'Viewfinder'는 카메라를 통해서 피사체를 내다보는 작은 창을 말한다. 용어 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상 이 Viewfinder라는 말은 위의 세 가지 한자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카메라의 작은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경치, 그러나 한편으로 그 경치는 한정되고 가공된, 즉 경계를 가진 경치다. 어떤 성능좋은 카메라라도 모든 경치를 다 담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프레임 안의 경치와 프레임 밖의 경치로 나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치에 대한 가공 및 변형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 과정에서 카메라를 든 주체의 의지가 그 한정된 Viewfinder에  반드시 반영된다. 그것은 한편으로 주체의 거울상이다. 즉 이 작은 네모창은 동시에 경치가 되고, 어떤 경계가 되고, 거울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경은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다. 그녀는 엄마의 죽음 이후 집을 나가버린 동생 후경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그 '검색'은 남강휴게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녀는 그 와중에 남자 혹은 인간 검색엔진인 창을 만나기도 하고, 온아라는 휴게소에서 일하는 직원이자, 유명 파워블로거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아니 더 이상의 스토리를 쓰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씨네 21> 리뷰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그저 죽 따라서 보게된다. 어떤 전체적인 줄거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그저 한장면 한장면 조용하고 차분하게 관조하게 된다. 어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나, 작가의 이력, 또는 미술 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작품의 순수한 미美에 빠져들어 보게 되는 순간, 그것이 이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온다. 영상의 형식으로 된, 디지털 시대의 미술작품을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본다. 그러고보니 이 스크린 역시 어떤 하나의 Viewfinder. 

이야기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아마도 이 이야기는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 같다. 어쩌면, 자매를 둔 여성이라면, 조금은 더 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경과 후경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후 사이버 추도 페이지에서 경이 되뇌는 독백같은 것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중간중간에 놓인 영화들의 상징에 더욱 마음이 갔다. 물론 이 영화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있다. 중간중간에 살짝 삽입되는 에니메이션들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의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정경, 후경, 창, 온아....그러나 그 중에서도 디지털 시대의 어떤 은유들에 대해서 관심 간다. 단지 그것은 작품 곳곳에서 카메라, 네비게이션, 노트북, 휴대폰, PMP 등 디지털 기기들이 출몰하고, 그들이 그것을 켜고, 동영상을 띄우고, 찍고, 바라보고, 충전하고, 로드하고, 끄고 하는 장면들이 반복되어서만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전체는 어떤 사이버 세계, 디지털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런 영화들이 가지는 음울한 디스토피아들은 묘하게 제거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았을 때 이 묘하게 제거된 디스토피아는 (현실적이기 때문에) 어떤 불안을 야기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몇 가지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기이한 장면은 사진기자 김박이 창을 카메라로 찍는 장면일 것이다. 현실에 창은 존재하지만,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서 보면 창은 보이지 않는다. 김박은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이럴 때 무엇을 믿어야 할까. 옛날 사람들은 카메라를 믿는 대신, 자신의 눈을 믿었을 것이고, 카메라를 가리키며 귀신들린 기계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보다는 카메라를 믿는다. 예를 들어, TV나 영화에서 활용하는 몇 가지 장면들.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해 놓는 것, 또는 귀신의 형체가 찍혔다고 하는 몇몇의 사진들. 그러므로 현대적인 디지털 시대의 눈으로 보면, 사진기자 김박은 카메라를 들고 날쌔게 도망가거나,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내뱉어야 한다. '죽은 사람이 보여요...' 그러나 사진기자 김박은 약간 갸우뚱거리다가 태연하게 창에게 다가간다. 왜냐하면 그는 검색엔진이니까. 검색엔진은 귀신 따위가 아니니까. 자신의 눈보다 디지털 기기를 더 믿는 거의 디지털화된 인간이 검색엔진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는가. 물론, 남자 창은 검색엔진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군대를 통해서 남자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디지털과 하나가 된, 그저 현재의 젊은 세대들을 상징하는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몇 장면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내뱉는 여러 독백들은 마치 어떤 연관성이 없는, 혹은 논리가 없는 검색결과들을 줄줄이 내뱉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이상한 모양의 파형들. 그것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물론 창(window)이라는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어쩌면 이 남강휴게소는 거대한 어떤 포털사이트와 같은 것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 상주하는 검색엔진 창. 경은 말한다. 이 남강휴게소는 하나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것이라고. 후경이라는 정보를 찾아 고속도로를 끊임없이 내달리는, 아니 검색하는 여자 경도 휴식을 취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을 끊임없이 검색하며 내달리는 많은 디지털 유목민들에게도 휴식을 취할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른바 블로그 혹은 홈페이지 혹은 트위터 같은 것들. 현실 세계에서 인간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평생을 헤메이는 것처럼, 현실의 반영인 사이버 세계에서도 수많은 네티즌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를 끊임없이 원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수많은 블로그와 홈페이지와 트위터들은 모여서 다시 어떤 거대한 네트워크, 혹은 포털사이트를 구축한다. 영화에는 그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가 또 하나 나온다. 여자 온아(On-我). 그녀는 스스로가 조금은 이름이 알려진 블로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디지털 분신 새아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가 일하는 곳은 휴게소 정보센터. 고속도로의 지도들을 가지고 있는, 현실 세계의 정보의 중심이자 검색엔진이 충전을 하는 곳. 사이버 세계는 현실을 반영하고, 동시에 현실은 사이버 세계를 반영한다.
................................

그러나, 검색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검색어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이버 세계에서는 동시에 누군가의 존재를 알기(찾아내기) 위해서는 아이디가 필요하다. 아이디를 모르고서는 그 누구도 찾아낼 수 없다. 경은 그녀의 동생 후경을 찾기 위해 아이디를 말한다. 그러나 경찰은 그녀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이버 세계 어디에서도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녀는 실종된 것일까. 창은 말한다. '실종자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그들을 실종되게 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가버린 것이지 실종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들은 단지 가버린 것이지 실종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말은, 왠지 사이버 상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예전에 사이버 상에서 친절하게 댓글을 달고, 방명록을 남기고, 대화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좋은 사람들은 다 실종된 것일까. 아니 단지 그들은 가버린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더 이상 검색되지 않을 뿐이다. 아이디를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혹여 아이디를 안다해도, 그들은 더 이상 검색되지 않을 수 있다. 경과 후경의 경우를 창이 검색했을 때처럼, 어떤 검색결과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검색 결과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네티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네티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검색 결과도 찾지 못한 경 역시 사이버 추모 페이지에 엄마를 그리며 쓴다. 엄마가 죽은 후, 정말 모르겠다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들도 아마도 자신들의 블로그에 이런 말들을 적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어떤 것을 검색하여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디지털 시대의 유영하는 인간들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 서정적인 디스토피아.

어떤 검색결과도 찾아내지 못하고,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서 망연하게 서 있는 경의 반대편에 후경이 있다. 그녀는 이제 온아가 있던 그 자리, 즉 남강휴게소의 정보센터 혹은 포털사이트의 정보의 중심에 존재하고 있다. 이제 그녀는 정보의 중심에서, 온아와 비슷하게 어디론가로 떠날 꿈을 꾸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나는 마지막에 궁금해질 뿐이다. 지금 후경이 있는 그곳에 있던, 꿈을 찾아 어디론가로 떠나기를 원하던, 온아와 그녀의 아바타 새아는 어디로갔을까. 그녀는 정말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갔을까. 그녀는 갑자기 어디로 실종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시사회의 좋은 기회를 주신 알라딘에 감사드리며.

 

- 2010년 4월, CGV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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